부는 바람 / 쏟아지는 비에 / 찢기고 떨어져 나가 / 꽃잎은 / 광야에 흩날려도 / 다시 또다시 / 새싹을 틔여 / 꽃을 피우리라 / 그러면 / 우리 만나리라 / 만나서 / 얼싸 안으리라 (선무, 두고 온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며, 남녘 서울에서, 2016년 7월 7일.) ● 작가의 개인 블로그(sunmu.kr)에 있는 글이다. 그의 절절하고 결연한 마음을 담은 모양새가 시인 못지않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개인적인 느낌이기도 하겠지만 선무 작가를 지근거리에서 대할 때마다, 익히 알려진 (탈북) 화가의 그것 대신 다가오는 그의 진중하고 묵직한 인간적인 면모들에 적이 놀라곤 한다. 그에게 통상적으로 따라붙는 숱한 관행적인 수식어들을 저편으로 한 채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지난한 삶에 대한 울림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종종 그의 일상적인 말과 글들이 혹은 취중진담과도 같은 호소나 여흥에서의 노래들이, 무엇보다도 그의 삶 자체가 그의 알려진 그림들보다도 더 마음에 가로 새겨졌던 것 같다. 이따금 그의 전시에서 볼 수 있는 텍스트나 설치 작업들도 매한가지이다. 작가 노트에 메모된 숱한 삶의 단상들, 그리고 힘과 기운이 가득 느껴지는 독특한 그의 서체나 이를 나무판에 꾹 눌러 새긴 텍스트 작업들에서 지난한 삶에 대한 작가의 고뇌와 열정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이번 전시 역시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무가 아니라 지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한 개인으로서, 혹은 그러한 우여곡절의 삶을 작업으로 이어가야 했던 작가로서 그가 겪으며 고민했던 세상에 대한 복잡하기만 한 심경들과 단상들, 그리고 그의 희망과도 같은 전언들이 독특한 설치 작업들로 펼쳐진다. 작가로서 개인 선무의 가슴에 품고 있던 마음들이나 어떤 지향들을 그나마 온전히 엿볼 수 있는 각별한 기회인 셈이다. 모두(冒頭)에 있는 그의 가슴 저린 염원을 담은 글처럼 말이다.

천사의 고민 An angel’s worries, oil on canvas, 91x72cm, 2012

작가의 각별한 부탁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이번 전시는 7월 27일 정전협정일에 맞춰 개막한다. 정전협정일은 1953년 7월 27일, 한국 전쟁의 정지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의 무장행동의 완전한 중지를 보장하는, 이른바 한국의 군사정전을 확립한 목적으로 국제연합군과 북한군, 중공인민지원군 사이에 맺어진 협정일이다. 이 협정으로 인해 남과 북의 적대행위는 일시적으로 정지되지만 전쟁상태는 계속되는 국지적 휴전상태에 들어갔고 남북한 사이에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설치되었다. 역사적인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 긴 세월의 간극이나 여타의 이유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잊고 있었던 이 날을 작가는 또렷이 가슴에 기억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러한 실질적인 정전이 완성되지 못하고 있음을 주시하면서 이를 못내 기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이 의미심장한 기념일을 각인시키려 하는 이번 전시는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작가의 염원의 장이자 그가 그간의 숱한 그림으로 차마 못다 했던 바람들을 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뜻 깊은 맥락에서 이번 전시의 전체적인 얼개가 가로 놓여진다. 작가의 인식처럼 아직 우리는 완전한 평화의 장에 놓이지 못한 분단국가이고 이러한 분단의 상처와 흔적들이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이러한 입장을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작가에게 남과 북이라는 체제 분단의 역사는 사회 전체의 그것이기 이전에 한 개인의 삶에 드리운 어떤 뼈아픈 상처와 아픔들이고 두 개의 체제, 국가에서 삶을 살아야 했고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넘나들면서 작업 활동을 해야 했던 작가 개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고 고민해야 했던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설치 작업의 텍스트로도 활용될, 작가의 노트에 빼곡하게 망라되어 있는 서로 다른 두 체제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단상들이 이를 증거 한다.(‘Korea의 풍경’) 그가 북한과 남한의 일상을 살며 세세히 느꼈던 그 숱한 차이들의 목록 속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두 체제를 뼈저리게 겪고 느끼고 고민했었나를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작가가 채집하고 기록한 남과 북의 갖가지 관행화된 정치적인 선전 문구들과 이를 바탕으로 화해와 통합의 의미를 가시화시키고 있는 설치 작업도 두 체제를 가로지르려 하는 작가의 단상들과 소망을 담아낸다. (‘Game’) 이들 서로 엇갈린 텍스트들은 남과 북의 거시적인 이데올로기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일상의 삶마저도 가로막고 있는 차이들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정치적이고 사회학적인 개념상의 차이를 넘어 작가의 지난한 삶 속에서 각인되어야 했던 삶의 차이마저 포함하고 있다. 단지 서로의 다름을 용인해야 하는 그런 차이가 아니라 서로를 겨누고 질시하는 그런 차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차이였기에 작가는 이들 서로 다른 차이들을 봉합하고, 가로지르려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전하려 한 어떤 지향성 혹은 한 개인으로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소망의 실체들이다. 그렇기에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남과 북의 각기 다른 텍스트들은 그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의 삶을 몸소 체험해야 했고 이를 스스로의 삶으로 통합하려 했던 작가로서 고민했을 삶의 오만가지 번뇌 같은 것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마치 수행이라도 하듯 이러한 삶의 고민과 번뇌들을 조목조목 상기하고 가시화시키면서 이를 엮고 이어간다. 그 서로 다른 차이를 끊임없이 이어가면서 무화시키는 것이다.

리념5 Ideology5, oil on canvas, 130x193cm, 2013

선무(線無), 그의 예명(藝名)처럼, 하나의 삶을 두 개의 체제로, 국가로, 이데올로기로 분리시키는 저 단단한 차이의 선들을 지우고 봉합시키려 하는 것이다. 마치 그동안의 작가로서의 그의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는 그의 작업의 지향이자 동시에 개인으로서의 삶의 내면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를 흔히들 지칭하는 ‘탈북’이란 레테르는 옳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지리적이고 공간적인 삶의 이동으로 그를 설명하기엔 그의 지난한 삶의 지난한 궤적이 훨씬 복잡할 뿐만 아니라 남북과 좌우 같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을 넘으려 하는, ‘탈, 경계’인으로서의 면모가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이들 통합의 전언들을 담고 있는 설치 작업들도 같은 맥락에서 읽혀진다. 그저 통일이라는 거창하고 요란한 정치적인 구호나 상징으로 전해오는 것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지난한 삶에서 숱하게 마주해야 했던 내면의 고민들과 이를 애써 극복하려는 절절한 마음들로 읽혀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서로 다른 국가 체제들을 외시하는 갖가지 상징들도 단순한 외연적인 의미들을 넘어선다. 그렇게 일면적으로 해석하기에는 그의 지난한 삶의 궤적을 통해 겪었을 개인적인 내면의 상처들이 너무도 크지 않았나 싶다. 그가 힘겹게 걸어온 삶만큼이나 그는 한낱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피해자일수 있으며 그러한 복잡다단한 삶의 상처와 희망의 이야기들을 작업으로 봉합시켜오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펼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처럼 그는 온전히 자신을 향해 뛰는 심장이 있는 선무일 뿐이니 말이다.

그렇다. 그는 선무라는 한 작가이고 뜨거운 가슴을 품고 있는 한 개인일 뿐이다. 그에게 유독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면모가 도드라지는 것도 어쩌면 그가 지구상 유래 없는 서로 극명히 다른 두 체제의 국가를 몸소 경험한 작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로 다른 체제 또한 그저 외적인 맥락일 뿐, 이들 두 다른 체제에 관한 것들만으로는 작가 혹은 개인으로서의 선무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면모를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 이번 전시를 통해 일부가 소개되고 이후 공개될 애덤 쇼버그(Adam Sjoberg)의 ‘나는 선무다 I AM SUN MU’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2014년 베이징의 한 미술공간에서의 개인전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담은 이 영상은 견고한 이데올로기 지형 속에서 작가로서의 험난한 삶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아울러 정치적 목적을 최대한 배제한 채 예술이 가진 보편성을 토대로 분단의 특수성과 북한의 현실을, 그리고 선무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소망을 담은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결국은 중국 공안과 북한의 방해로 개인전이 무산되어야 했던, 현실의 작가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가시화시키면서 작가를 둘러싼 체제, 이데올로기의 모순 또한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저 자신의 삶에 각인된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절실한 마음으로 이에 대한 해결을 염원한 작가에게 현실이 남겨야 했던 상처들이다. 그는 말한다.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죄’가 되어 돌아오고, 세상의 평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죄’가 되어 돌아오고, 이 세상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내가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이야기 하는 것이’죄’가 되어 돌아왔다고” 어쩌면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그 내면의 실존을 향한 지향성 또한 더욱 커졌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그것들로만 보는 세상에 대해 그는 단지 자신의 삶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간의 왜곡된 시선들조차 개인의 삶으로 작가의 삶으로 굳게 다져가면서 세상을 향해 외친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 그것이 행복이라면 행복하지 않겠습니다 / 그것이 전부라면 살 생각이 없습니다 / 그것이 아닌 나를 알았습니다 / 이제 세상에 대고 소리칩니다 / 나는 선무라고”

설령 그것이 행복이라 할지라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외침은 단호하기만 하다. 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이 외침은 아마도 작가가 거대한 체제가 꿈꾸는 집단의 행복이나 혹은 개인의 사적인 욕망만으로 채워지는 그러한 행복이 아니라, 다시 말해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정향된 그런 행복이 아닌 개인의 충일한 삶의 지향과 만족에서 삶의 행복을 찾으려 했기에 그렇게 외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이 아닌 나(를 알았습니다)’는 결국 체제와 이데올로기로 규정되지 않는 나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비단 선무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외침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도 線無(선무)처럼, 우리 스스로를 외적인 잣대로 규정하는 것들을 가로지르고, 무화시키는 삶을 향해 나야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분단이라는 현재 혹은 과거 저편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체제 모순이 극복이 될, 저 근 미래의 어떤 지평에 자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의 염원과 소망은 온갖 미디어상의 서로 다른 이유로 외치고 있는 구호와 이데올로기로서의 통일이 아닌, 그 서로 다른 체제를 몸소 체험하고 고민하면서 힘겹게 체득된 것들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분단체제의 아픔을 개인사의 내면적인 번민들로 고뇌해야 했을 한 개인으로서의 절절한 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된 경계들을 가로지르고 넘어서고자 하는 한 작가로서의 외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이유로 대안공간 루프에서의 이번 전시 또한 작가의 익히 알려진 그림만을 소개하는 그런 전시가 아니라 작가가 간절히 염원하고 소망해왔던 마음들을 담아 전하려 했던 것 같다. 같은 땅에서 한 하늘을 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와 우리가 동시에 다가서야 할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작가 개인의 삶의 궤적에서 꾸준히 지향해 온 절실한 소망을 담고 있어 뜻 깊은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이런 이유들로 인해 동시대 작가들의 여느 공간적 설치 작업들과도 구별된다. 아무쪼록 이번 전시가 우리가 처한 이 남다른 현실은 물론 작가가 전하는 간절한 희망의 전언들이 모두에게 공감되는 뜻 깊은 장이길 기대해 본다. ■ 민병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