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는 탈북 화가이다 ● 선무는 2006년 이후 한국 미술계에 등장한 주목 받는 작가 중 독특한 위치에 있는 화가이다. 새터민 가운데 유일한 직업화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반도 문제를 공유하는 유럽과 영미권의 많은 이들에게도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다. 여러 매체에서 그를 인터뷰했고 중요한 기획전들에 초대되기도 했다. ●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또 그의 그림에 섬세한 눈길을 돌리기에는 탈북 화가라는 그의 실존적 얼개가 너무도 강렬하다. 그와 그의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사회과학적이며 정치경제학적인 태도를 버릴 수 없다. 굳이 북한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통일부에 적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그렇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이후 축적된 애증의 모순투성이가 의식의 깊은 내부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애초에 어설픈 감성적 수식어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선무의 예술적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실존적 얼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무와 우리는 불가피하게도 거기에서 출발해 조우해야 한다. ● 선무는 대학 3학년까지 북한에서 미대를 다니다 오랜 기간 생사의 경계에서 이리저리 쫓기며 광대한 중국과 동남아의 밀림을 가로질러 남한에 정착했다. 남한에서도 미술을 전공했고 현재 북에서 못 이룬 화가로서의 일상을 살고 있다. 남한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선무의 생활은 크게 바뀌었다. 미술시장에서 그의 그림은 인기 있는 품목이 되었고 어떻게든 선무는 그에 적응해야 했다. 이렇듯 선무의 남다른 과거로 인해 세계미술에 편입되는 한국의 평균적인 현대미술과 달리 그와 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길을 간다. ● 눈에 보이는 것과 실체는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긴 여정 끝에 북한을 살다 남한을 사는 화가 선무의 삶과 그림은 우리의 인식과 상상의 밖에 있다. 그와 우리 사이에는 냉전과 현대사의 그 숱한 질곡의 이미지와 수사(修辭)만이 빽빽하다. 난감함의 향연이 끝없이 이어진다. 남과 북의 삶을 모두 구체적으로 사는 것은 오롯이 선무에게만 해당된다. ● 오늘날 예술가들은 그 자신의 소외를 경험하지 않고는 어떤 창작도 불가능해 보인다. 창작은 경험에서 솟아오른다. 작품의 감상과 이해 또한 경험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감과 일체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이상적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기에 선무의 경험과 우리는 너무도 멀다. 이 요원한 거리와 틈이 서로를 소외시키며 상호 결핍의 상태를 만든다. 우리가 먼 만큼 선무 또한 우리와 멀다. 낯섦이고 타자중의 타자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선무의 그림 앞에서 무력하다. 우리는 도저히 북의 실체를 그릴 수 없다. 우리에게는 관념적이거나 이미지로서의 북한만을 그릴 수 있을 뿐이다. 세계 유일의 권력세습제 공산국가, 인권 사각지대, 그리고 굶주림과 억압으로 죽어나가는 인민의 모습. 거기엔 어떤 미술사의 방법론도 예술적 이론과 비평도 궁지에 몰린다. 그의 그림이 바로 우리 코앞에서 벌이는 이 깜깜한 막막함의 실체는 그러기에 불안하고 생득적이다. ● 그림 속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 사이비교주로 분한 김정일, 부러울 것이 전혀 없는 삶을 산다는 북의 사람들의 얼굴에서 화가 선무의 얼굴을 본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서로 매우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동족(同族)이라는 피의 순결과 집착, 이 삶의 부조리성이 선무와 우리가 관계를 맺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 밖의 길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 어때! How do I look!, oil on canvas, 72x60cm, 2009

북한뉴스와 일기예보 ● 만일 예술이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그 환영을 깨는 것은 삶과 현실이다. 남과 북이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각자의 길을 따라 만들어 온 균형과 환상은 선무의 삶과 그림 속에서 해체된다. 그의 가장 개인적인 예술적 사건은 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등장으로 한국전쟁의 정전(停戰) 이후 사이비 평화에 익숙한 의식은 치명적인 진실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것은 현실의 구체적인 경험으로 예술을 완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술은 경험을 원천으로 하니 말이다. ● 선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단순히 호기심의 수준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가선용으로서의 그림감상에서 탈피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선무 개인의 의지도 그의 그림의 주제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 그것이 우리와 선무에게 주어진 유일한 조건이다. 그것은 동시에 예술의 조건이다. 선무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투명한 사실을 확인한다. 예술의 안에서 벌어지는 것보다 예술의 밖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더욱 드라마틱하다는 것을. 역사는 분명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필연과 우연이 적당히 섞인 채 작은 사건들이 전체 변화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가 유난히 그렇다. ● 남한은 북한이 한창 잘나가던 60,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전쟁과 빈곤 그리고 군사독재라는 이중 삼중의 현실과 싸워야 했다. 베트남의 밀림으로 독일의 광산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모래사막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은 가야 했다. 병태는 자청해 바보가 되었고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당시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아서. 우리는 난쟁이가 되었고 어둠의 자식들이라 외치거나 서울 예수를 쫓았다. 지난 시기 우리의 모습은 오늘 북한을 탈출하는 이들과 오버랩 된다. 이 씁쓸한 닮음이 마치 덧난 상처와 같이 쓰리다. ● 우리는 오랜 시간의 질곡을 지나 21세기를 살고 있다. 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가 햇빛정책을 시작하면서 미술관계자들 사이에서 한반도의 통일 이후의 미술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이미 여러 세대 동안 전혀 다른 사회를 경험한 이들의 미술이 어떻게 정상적으로 소통가능한지, 또 어떻게 만나야 소통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그러나 여전히 철통 같은 DMZ의 현존에 반비례해 우리의 인식은 불분명했다. ● 매일 전송되는 북한뉴스를 생각해보자. 북한뉴스는 마치 9시 뉴스 말미에 붙는 일기예보처럼 반복된다. 일기예보와 다른 점은 매번 같은 기상변화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맑음과 흐림을 반복. 이 반복이 재생산해내는 또는 해가 바뀌어도 자기 복제를 반복하며 왕왕 한랭전선이나 장마전선을 이루기도 하며 불안과 우울을 예고한다. 그러면 일기예보관은 북이나 남으로의 외출을 가능한 삼가 하길 권한다. 바뀌는 것은 일기예보관의 미모와 패션뿐이다. 기상예보가 틀려도 별로 상관없다. 북한의 핵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유령이 되고 김정일은 이미 여러 번 죽었다. 그렇게 남과 북은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은 스타일과 이미지만으로 존재한다.

korea의모습(남) the image of Korea(South), oil on canvas, 162x130cm, 2009

 

korea의모습(북) the image of Korea(North), oil on canvas, 162x130cm, 2009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것 ● 누군가 질문한다. 한국은 반도국인가? 대부분 정상적 교육을 받은 이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경도와 위도가 가로지르는 세계지도 속의 한국은 그렇다. 그러나 선무에게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누군가는 한국은 섬나라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한국에서는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없지 않은가. 분단국가의 지리학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리시간의 과학적 상식은 문화적 또는 정치경제학적 오류로 판명 난다. ● 선무는 중국 대륙과 라오스의 밀림을 돌아 남으로 왔다. 개성공단의 공산품이나 소나 쌀은 오고 갈 수 있어도 선무와 우리에게 남과 북은 목숨을 걸어야 오갈 수 있는 섬과 같다. 북한은 관광 상품으로 소비할 수는 있어도 자유로이 공감하거나 소통할 수는 없다. 슬프게도 가슴 진한 가족상봉과 고향방문의 살풀이만이 오고 간다. 더욱이 그 살풀이조차 제한적이며 미디어로 매개되는 울부짖는 이들의 모습은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살을 에는 현실은 그저 실성한 노인들의 신파로 전락한다.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겪는 사사로운 고통을 위한 것이다. 불경스럽지만 남북의 현실은 과잉현실의 희비극으로 변모한다. 처참한 현실은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시네마의 재료일 뿐이다. 우리는 제 3자의 자리로 밀려나고 관객이 되어 의도하지 않은 비극적 소비자(消費者)가 된다. 이런 역설이 우리의 논리이고 합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더 이상 같은 민족이라 부르길 주저하게 하는 끝없이 밑으로 주저앉는 불안의 실체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명한 진실과 이념이 사라진 텅 빈 망각의 현실이 우리를 구성한다. 우리는 단지 한편의 에피소드를 증언하는 화자(話者)일 뿐이다. 우리가 발을 딛는 실존의 이방인이 된다. ● 통일이 되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민족과 국가의 행복과 나 개인의 행복은 일치할 수 있을까? 혹 섬나라로 추락한 우리의 어떤 막연한 맹목은 아닐까? 알 수 없다.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고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선지자들의 계시는 불투명하다. 우리 사회의 작은 모순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 민족이 안고 있는 큰 모순과 갈등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고 어떤 황당무계한 금기처럼 불편하다. 한민족과 가족에 기초한 우리사회의 순결한 금기의 드라마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 둘이란 숫자는 불안하다고 말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때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그렇다.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 또 좌와 우로 갈라진 세계는 고통스럽지만 시간을 따라 흘러갔다. 시간은 우리가 비통한 현실을 망각하고 웃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남과 북, 좌와 우의 분열된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무거운 대가를 끝없이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놀랄 일은 아니다.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사는 한국의 모습은 그렇다. 이 지루한 불안과 비애는 구체적이며 투명하다. 이런 현실이 우리가 보려 하는 탈북 화가의 겉모습을 구성한다. 북에서의 성장과정과 탈북 과정, 남한에서의 적응과 창작과정을 형성하는 것들의 이해는 예술의 과제이기에 앞서 실존의 과제이다. 역사는 하나가 둘이 됨으로써 생기는 불가피한 상처를 가르쳤다. ● 어느 민족에게나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은 단지 지금 나의 문제가 아니거나 의식적으로 문제의 선상에 올리지 않아서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절박한 문제는 일상적인 문제로 번역되고, 선무와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을 수 있다. ● 선무와 우리는 가장 합리적이며 올바른 만남에 대해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다. 어떤 훌륭한 조언도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한다. 어떤 제안이나 충고도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구석이 있거나 상투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기간에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인 결핍과 긴장이다. 이 팽팽한 실존의 비루한 긴장상태가 그와 그의 그림,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반복하여 끌어당기고 밀어내게 한다. 이것이 우리와 선무가 감당할 몫이다. 그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우리에 대한 그의 오해는 동일하게 타당하고 존중 받아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선무와 우리의 학습은 현재진행형에 있다. 이 전시는 단지 그 길에 들어서는 길목 어딘가를 가리킬 뿐이다. 서로가 인정할 정도로 제대로 만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 김노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