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마포구 연남동의 한 갤러리에서 우연히 북한 출신 선무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붉은색의 북한 선전 문구는 반공교육을 받았던 나의 시선을 자극해 잠시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조심스레 전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자신의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며 작업했을 그의 작품은 갤러리 전체를 서늘하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자신이 경험한 두 체제를 향한 비판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붉은 기운이 흐르는 작품을 보면서 어느새 ‘선무’라는 작가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이번 함석헌 탄생 120주년 전시를 기획하며 씨ᄋᆞᆯ의 인권과 자유, 평화를 위해 역동적으로 살다 간 인권운동가의 정신이 깃든 함석헌 기념관에서 남과 북의 경계선에 서 있는 작가의 치열한 삶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긴 작품을 전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를 찾았다.
강렬한 그의 작품으로 먼저 만났던 선무 작가와 미팅을 위해 작업실로 찾아가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북한 출신’이라는 것에 선입견으로 긴장한 채 만난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온화한 눈빛을 보여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차가움과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며 그에게서 순박함을 읽었다. 이후 작업실에서 몇 차례 만나 치열하게 살아내 온 자전적 스토리가 담긴 선무의 작품을 보면서 평화를 원하는 그의 염원과 마주할 수 있었고 우리 역사의 비극이 현재 진행형인 이 시대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북한을 탈출해서 남한으로 오기까지의 힘든 여정과 남한에 살고 있지만,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선무의 정체성이 곳곳에 드러나는 작품 중 판문점에서 남측 경계선과 북측 경계선을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건너가던 역사적인 순간이 담긴 작품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원하는 우리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촛불집회, 두고 온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남북 교류에 대한 염원을 연 속에 담아 날려 보내는 종이 작품과 그리운 남과 북의 가족이 상봉하여 환하게 미소 짓는 작품을 통해 우리 역사의 비극에 대해 돌아보고 씨ᄋᆞᆯ의 자유와 평화가 남과 북의 절실한 과제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에서는 씨ᄋᆞᆯ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거침없이 행동했던 함석헌 선생의 정신이 담긴 말꽃(어록)을 혼란스러운 삶을 감내하고 있는 작가의 힘 있는 필체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평화’는 어떤 경우라도 우리의 일상과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화두다. 잠시 훈기가 돌았던 남북 정세도 차갑게 얼어버렸고, 지속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상의 평화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또 희망을 놓지 않는다.
남북통일의 염원이 담긴 탈북 작가 선무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 전시를 통해 남북의 평화와 일상의 평화를 찾으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행진에 그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 윤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