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화가 선무는 얼굴 없는 작가다. 북한 출신 예술가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지만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해서다. 단순히 탈북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예술을 패러디한 팝아트 작품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를 풍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올해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인 <나는 선무다>는 그에 관한 영화다. 지난해 그가 베이징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다뤘다. ‘선무’는 ‘선이 없다’는 의미의 예명으로,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는 그의 예술철학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는 베이징 전시회 과정에서 분명 예술에 경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영화는 긴박했던 전시회 전후를 담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1998년에 탈북한 화가 선무는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에게 피해가 갈까 봐 ‘얼굴 없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시사IN 조남진

1998년에 탈북한 화가 선무는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에게 피해가 갈까 봐 ‘얼굴 없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북한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군복무 중 선전물 담당 화가로 활동했다. 그래서 사회주의 프로파간다에 정통하다. 3년 동안 중국에서 탈북자 생활을 한 뒤 라오스와 타이를 거쳐 한국에 들어온 그는 미술대학에 들어가 그림을 다시 배웠다. 그리고 그린 사람이 김일성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붓을 들었는데 떨렸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을 그려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서는 일반인이 함부로 김일성·김정일의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그림을 그릴 때 누군가 뒤에서 칼 들고 위협하는 것 같아서 계속 뒤돌아보았다. 그렇게 그림을 완성한 후 ‘내가 남쪽으로 왔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남쪽에서의 경험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미술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하는 야한 게임에 놀라고, 미대 교수와 강사들이 특별한 기법을 강요하지 않고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라고 하는 것에 놀라고, 그렇게 뭘 그렸는지 모를 그림이 팔리는 것에 놀랐다. 그런 그가 가장 놀란 것은 예술가가 경찰을 대하는 태도였다. “사진작가 노순택씨와 2인전을 하는데 경찰이 찾아왔다. 그러자 노 작가는 ‘무슨 이유로 하는 조사냐. 영장 가지고 와서 조사하라’고 강하게 항의하며 돌려보냈다. 나는 북으로 다시 쫓겨나나 싶어 간이 콩알만 해졌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남한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암튼 큰 걸 배웠다.”

사진가 노순택과 선무의 독특한 ‘북한 프로젝트’

서울시립미술관의 특별전 ‘북한 프로젝트’에도 그의 작품과 노순택 작가의 사진이 동시에 전시 중이다(9월29일까지). 둘의 작업은 대비된다. 노 작가는 북한에서 남한의 모습을 보고 그는 남한에서 북한을 본다. “처음에는 노 작가가 북한 사진으로 남한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남북이 별개라고 봤다. 그냥 생각 없이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공감이 된다. 나도 남한에서 북한을 볼 수 있게 되었다.”

1998년에 탈북해서 남한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한 그는 지난해 베이징에서 전시회를 추진했다. 그런데 전시회를 열었던 미술관이 개관하는 날 봉쇄되었다. 가슴에 김일성 부자 배지를 단 북한 사람들이 전시장을 둘러쌌고 중국 공안은 전시회 주최 측을 조사했다. 그는 남북 대립의 냉혹한 현실을 실감하고 돌아서야 했다. 그때 압류된 그림이 아직도 베이징에 남아 있다.

이렇게 가파른 삶을 살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위트가 있다. 어떻게 보면 북한 사회를 비꼰 것 같지만 다르게 보면 남한 사회를 비튼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고 인생이라고 했다. “그림을 통해서 나는 숨어도 숨은 것이 아니고 나서지 않아도 나선 것이 된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북에서는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위한 프로파간다를 했는데 여기서는 나를 위한 프로파간다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대신하려 한다. 그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Via 시사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