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작가가 바라본 제주4·3"
선무, 10월 4일까지 이데올로기전
탈북 작가는 제주4·3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1990년대 말, 탈북 후 국내에 정착해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 '선무'가 지난 2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포지션 민 제주에서 '이데올로기'전을 연다.
이데올로기는 '정치 이념'이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전시에서는 편향적인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이데올로기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가 없다고 전하며, 작품을 통해 정치적인 이념 없이 화목하게 사는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작품들은 탈북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선전화풍'이 주를 이룬다. 이는 자기모순적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국내에서 북한의 선전화 양식을 차용해 작품으로 표현하는 행위는 '소격효과-낯설게 하기'를 노린 예술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스며들기 보단 드러내기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작품은 더 이상 생업 현장의 생산력을 고취하기 위한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 분단 현실을 비틀고, 비판하며 평화의 염원을 그려내는 미디어로서의 기능과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성산일출봉, 선무
작가는 한경면 산양리 '예술곶 산양' 레지던시 작가로 1년여간 활동하며, 제주를 배경으로 하나 작품들을 펼쳐냈다.
대표작인 '수학려행'은 협재해수욕장에서 제주와 북한 여중생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담았다.
'성산일출봉'은 예술곶 산양에서 활동할 당시, 동네 아줌마가 들려준 '제주4·3'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그림 하단부의 검정현무암은 억울한 영혼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송악산, 산방산, 한라산이 한 화면에 포착된 모슬포의 모습을 담은 작품 '려명'은 슬픈 4·3의 역사를 딛고 새로운 시대로의 염원을 표현한다.
이외에도 작품 '동백'은 4·3의 상징인 동백꽃이 뒤플리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꽃을 피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주로 제주 체류의 경험을 담아냈으며, 섬의 풍경과 4·3 관련 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더불어 작가가 제주의 화산석인 현무암을 다듬어 화병처럼 만든 조각과 DMZ에서 주워 온 가시철조망에 동백, 진달래를 표현한 작품들은 작가의 표현영역을 넓히는데 일조한다.
한편, 선무 작가는 북한에서 태어나 중·고등하교를 졸업하고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1990년대 말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후 중국에서 거주하다가 2000년대 초 국내로 정착했다. 이후, 200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해 국내외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 제민일보(https://www.jemin.com)
“선을 넘어선 예술은 어떻게 분단의 기억을 현재로 이었을까”.. 경계에서, ‘이데올로기’란 환상을 마주하는 법
20일~10월 4일 ‘포지션 민 제주’
선무 작가 ‘이데올로기’ 전

#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 떠오르는 그리움은, 그저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마저 인간의 역사와 이념이 만든 경계의 흔적이라는 데서 출발한 작업입니다.
미학적인 표현의 차원을 넘어선 붓질은 그런 경계를 넘어, ‘이데올로기’의 무게를 화폭에 담아냅니다. 이데올로기란 게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덧칠했는지, 그 과정에 발견한 허무함을 작품에 반영했습니다. 이념적 틀 속에 억압됐던 기억을 끄집어내,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들입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이데올로기의 틀을 뒤집어, 오랜 시간 강제됐던 믿음의 허상과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드러냅니다.

20일 시작한 선무 작가의 ‘이데올로기’전입니다.
작가의 붓질은 이데올로기의 무게를 해체하는 도구가 됩니다. 익숙한 북한의 ‘선전화’ 차용하되, 남북 분단을 선전하던 이념의 환상을 도발적으로 비트는 방법을 가져왔습니다. 작품에서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정치적 기호가 아니라 역사적 상처의 연장선이자, 체제의 서사 속에 반복되는 공허함의 상징으로 각인됩니다.
■ 이념의 틀 넘어.. ‘실재’를 향한 갈망
작가가 보여주려는 ‘이데올로기’는 정치 체제란 의미를 뛰어 넘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와 유사한 구조로도 읽힙니다. 이데올로기의 구조적 작동을 붓질로 해체하는 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탓입니다.
사회의 구조적 틀 속에 사적 영역에서 일종의 지배계급의 작동 원리이자 사람들의 자발적 동의를 통해 체제 유지 수단으로 기능한 이데올로기를 해석하는 작가의 씁쓸한 통찰은, 곧바로 남북 경계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전환해 화폭에 펼쳐집니다. 남북 간에 굳어진 경계선을 넘나들며, 정치적 체제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방식을 냉철하게 해체합니다. 경계에 서서 그 선을 다시 그리지만, 이번에는 고착화된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그어진 선들입니다.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로, 4.3의 진실을 알리는 데 매진하며 예술작업과 함께 실천적 예술을 펼쳐온 박경훈 작가는 이런 선무 작가의 작업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선전화는 더 이상 최고 존엄이나 생업 현장의 생산력을 고취하기 위한 체제 선전에 유용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 북한 울타리 밖에서는 낯설기만 한 그의 선전화풍 그림들은 오히려 웃프거나 슬픈, 남북 분단 현실을 비틀거나, 비판하거나 또는 평화의 염원을 그려내는 미디어로서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부여받는다”라며 “선북(線北)의 미디어가 선남(線南)의 또는 그 둘 다 아닌 선 밖의 미디어로 거듭난 셈”이라고 진단합니다.

작품에선 낡아버린 미디어, 즉 ‘선전화’가 주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재해석하는 예술적 실험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선 상징계 질서에 억압된 욕망을 해체하려는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철학적 분석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욕망은 상징계 질서에 갇혀 그 너머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그 너머가 바로 ‘실재계’로 설정됩니다. 실재계란 욕망이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지점이자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대상으로 설정됩니다.
상징계 속에서 욕망은 갇혀 있지만, 작가는 그 경계를 넘어 실재계에 닿으려는 갈망을 형상화합니다. 현실을 지배하는 이념적 틀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구속했는지 작품을 통해 직시하게 만드는 셈입니다.

■ ‘천사’의 시선으로 본 분단의 상흔
더불어 작가의 작업은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언급한 ‘역사의 천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근대 비판의 장치이기도 한 ‘천사’란 개념은 파울 클레(P. Klee)의 데셍 ‘신천사’(Angelus Novus)’에서 가져온 것으로, 역사의 진보가 단순히 전진하는 것만이 아닌 그 후에 남겨진 파국과 폐허 속에서 인간이 무력하게 존재하는 모습을 설명합니다.
역사란 게 진보가 미래를 향해 등을 떠밀어도 잔해 더미와 파국을 어루만져야 하듯, 작가의 작품도 현실을 직합니다. 자신의 작업을 통해 진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분단의 상처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에게 남긴 허무한 오늘을 작품으로 투영해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작품이 남과 북 모두에서 버려진, 어딘가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을 위한 예술적 저항으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작가의 붓질은 평화와 통일을 향한 염원을 담고 있지만, 그 염원은 잔해 위에 결과를 남기고 있습니다. 남북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이념을 초월한 존재들을 상상하고 그 이상향을 향한 갈망은 작품에 온전히 담아냈습니다.

■ 제주에서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다”
작가는 분단의 상처를 재해석하며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들을 꿈꾸고 평화와 통일을 향한 비전을 그립니다. 붓질 하나하나, 이념적 경계에 저항하면서 그 경계를 지우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쑥불쑥 드러나는 이유입니다.
작가노트를 통해 작가는 “입이 있어도 말 할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으며, 발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것이 이데올로기”라면서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 없는 것”이라 선언합니다. 남과 북이 함께 화목하게 사는 상상 속에서, 예술을 통해 그 비전을 구현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제주에서의 작업들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념적 분열과는 거리가 멀지만, 제주라는 곳이 분단의 현실과 고통을 함께 경험한 공간인 만큼, 4·3의 비극을 겪은 섬의 풍경 속에서 남북 분단의 상처에 공감하며 분단의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보려 합니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입이 있어도 말 할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발이 있어도 갈 수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수 없게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라며 “결국 이데올로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 없는 것”이라 선언합니다. 이어 “이제 ‘그것’ 너머에서 화목하게 사는 남과 북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작품으로 표현한다”라고 작업 취지를 전했습니다.
박경훈 작가 역시도 “(작가는) 탈피, 탈색을 통한 착한 탈북 주민으로 남한 사회의 안정된 정착 또는 상업 화단의 성공한 예술가로 살기보다는, ‘선’을 지우는 적극적인 작업을 통해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상향-통일된 나라를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라며 “더 낯선 제주에서 자기보다 앞서 ‘선’을 지우려다, 치도곤을 당하고 여전히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제주 섬사람들, 그들이 죽음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제주의 역사와 그 역사가 스며 슬프나 아름다운 섬을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앞으로 작가의 작업과 방향성에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제주시 삼도2동 주민센터 옆, 갤러리 ‘포지션 민 제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황해도 출신의 작가는 북한에서 인민군 복무를 마치고 90년대 말 두만강을 건너 탈북해, 이후 중국에서 다시 대한민국을 찾아 정착했습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회화과) 졸업(2007) 후, 같은 대학 미술대학원(회화과)을 졸업(2009)한 작가는 ‘행복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대안공간 충정각, 서울, 2008)를 시작으로 ‘마인드 더 갭’(sbd갤러리, 뉴욕, 2011), ‘紅.白.藍’(원전 미술관, 베이징, 2014), ‘Iook at Us’(kunstraum, 독일 뮌헨, 2019), ‘나는 선무다’(마인블라우갤러리, 독일 베를린) 등 20여 차례 개인전을 개최했고 ‘분단을 보듬다’(이한열기념관, 서울, 2020), ‘국제 콜라보 벽화 전시회’(엘리자베스 존스 아트센터, 미국 오리건주, 2021), 전주수묵비엔날레 특별전 ‘산처럼 당당하게 물처럼 부드럽게’(해남 대흥사, 2023) 등 다수 단체전에 참가하는 등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재 예술곶 산양 4기 입주작가로, 제주에서 레지던시 활동을 하며 제주와 4.3에 대해 알아보고 작품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백두산 맥주·한라산 소주’ 폭탄주처럼 상상하는 새로운 남북
9월 20일(금)부터 10월 4일(금)까지 선무(線無) 작가 개인전 ‘이데올로기’가 제주 갤러리 ‘포지션 민 제주’에서 열린다.
선무 작가는 북한 출신이다. 북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 복무까지 마친 뒤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말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후 중국에서 어렵게 지내다, 2000년대 초 구사일생으로 대한민국에 정착한다. 전공을 살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과 학사·석사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국내·외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선무 작가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창작 공간 ‘예술곶 산양’에 레지던시 작가로 1년 남짓 머물면서 창작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작가는 소개 글에서 “우리에게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토분단이었고 동족끼리 죽음의 전쟁이었으며, 이념대결로 가슴 아픈 상처를 낳았고, 수많은 생명들이 정치권력의 리익을 위해 희생양으로 억울하게 사라지게 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제정신 아닌 허수아비로 만든다는 것”이라며 남한과 북한 양쪽을 몸소 겪으며 느낀 점을 풀어냈다.
그러면서 “이데올로기는 분단 한 세기가 다가오도록 남북의 인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고 지금도 안겨주고 있다”며 “사람이 사람으로 살수 없게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 너머에서 화목하게 사는 남과 북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작품으로 표현해 본다”고 설명했다.
전시 소개글을 쓴 박경훈 작가는 “선무의 작품은 소위 ‘선전화풍’이 주를 이룬다”며 “남한 사회에서는 이미 쓸모없어진, 인민의 정서적 고양 수단이었던 북의 선전화의 양식을 차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행위는 자신의 태생지에서 배태한 조형 양식을 차용해 남한 사회에서는 이질적인 브레히트의 ‘소격효과(疏隔效果)-낯설게 하기’ 같은 것을 노린 예술적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스며들기보다는 드러내기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는 남한 사회도 이 세상의 온전한 답은 아닌 것이다. 탈피, 탈색을 통한 착한 탈북 주민으로 남한 사회의 안정된 정착 또는 상업 화단의 성공한 예술가로 살기보다는 ‘선’을 지우는 적극적인 작업을 통해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상향-통일된 나라를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고 소개했다.
박경훈 작가는 “나는 그가 더 낯선 제주에서 자기보다 앞서 ‘선’을 지우려다, 치도곤을 당하고 여전히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제주 섬사람들. 그들이 죽음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제주의 역사와 그 역사가 스미어 슬프나 아름다운 섬을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더했다.
이번 전시는 통일부, 남북하나재단, 평화예술교류협회, 네오룩과 함께 한다. 포지션 민 제주는 제주시 삼도2동 주민센터 옆에 위치해 있다.
출처 : 제주의소리(http://www.jejusori.net)
문익환·선무 협업 전시 '나는 가고 너는 와야지' 진행
사단법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가 문익환 목사와 선무 작가의 협업 전시 '나는 가고 너는 와야지'를 진행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8년 탈북해 2002년 남한에 정착한 황해도 출신 선무 작가의 작품 약 20점과 문익환 목사의 유물이 소개됩니다.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는 "올해는 문익환 목사 서거 30주기가 되는 해"라며 "남한으로 온 선무 작가의 시선으로 분단과 평화를 조명하고, 꾸준히 평화와 통일을 얘기해 온 문 목사의 뜻을 이어 가기 위해 전시를 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전시는 서울 강북구 문익환 통일의 집에서 오는 10월 31일까지 이어집니다.
출처 : 노컷뉴스
4·3 75주년…탈북 작가의 첫 '전시전'
◀ 앵 커 ▶
탈북 이후 이름과 얼굴을 숨긴 채
'선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주로 이념으로 가로막힌 안타까운
남북의 현실을 그리는데,
올해 4.3 75주년을 맞아
제주에서 첫 전시가 열렸습니다.
김하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작은 틈 사이로 빼꼼히
내민 두 눈동자.
화가 자신이 두만강을 넘어
처음 다른 세계를 마주했을 때 느낀 두려움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검은 철조망 위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빨갛고 파란 새들.
이념의 벽을 넘어
자유롭게 넘나들긴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겁니다.
1998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 작가 '선무'
선이 없다는 뜻의 이름에는
남북을 가로막는 정치적, 이념적 경계선을
지우고 싶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 INT ▶ 선무 / 화가
\"우리 서로는 원치 않는 싸움을 하는 것들이 되게 되게 슬프더라고요. 그래서 더 우린 잘 놀 수 있는 사이라는 걸…(얘기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말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남과 북을 넘어 전세계를 향합니다.
장갑차를 막는 소년을 통해선
이념과 종교로 갈라져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쟁을 멈추라고 말합니다.
올해 제주4·3 75주년을 맞아
제주에서 처음 열리는 선무의 전시.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평화를 바라는 선무의 마음은
제주4.3 당시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했던
제주도민들의 마음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 INT ▶ 양동규 / 탐라미술인협회 사무국장
\"75년 전 제주도민들이 열망했던 하나된 나라 하나된 국가를 열망했던 것을 선무 작가는 현재 그 작업들을 이어오고 있어서…\"
7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역사 왜곡와 이념 논쟁이 끊이지 않는
제주 4.3.
이념의 벽을 넘어 함께 하자는 선무의 그림이 4.3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 st-up ▶
\"올해 4.3 75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는
다음 달 9일까지 열립니다.
MBC뉴스 김하은입니다.\"
◀ END ▶
Pluto umarmt die Kims. Sun Mu im Projektraum Meinblau
Der Künstler Sun Mu wuchs Anfang der 1970er-Jahre in Nordkorea auf. Dort absolvierte er eine Ausbildung zum Propagandamaler, floh aber über China, Thailand und Laos nach Südkorea. Anlass war die Hungersnot in Nordkorea der 90er Jahre. In Seoul, wo er mittlerweile lebt, studierte der Künstler Bildende Kunst. Aktuell zeigt der Projektraum Meinblau, wo Sun Mu eine einmonatige Residenz verbringt, eine Einzelausstellung des Künstlers unter dem Titel I AM SUN MU. Facing North Korea.
Sun Mus Werke kreisen um die politische Lage der koreanischen Halbinsel, die sich 1948 in Nord- und Südkorea teilte.
Die politische Situation in Nordkorea ist verheerend. Geradezu irrsinnig erscheint die alltägliche Lebenswirklichkeit der Bevölkerung, die rund um die Kim-Dynastie (Kim Il Sung, Kim Jong Il und Kim Jong Un) rotiert: Allmorgendlich tönt ein Trauerlied für den vor 25 Jahren verstorbenen Begründer der Familie. Brennt ein Haus ab, muss das Kim-Porträt – selbstverständlich haben alle Menschen ein solches Porträt in ihrer Wohnung – gerettet werden.
Sun Mu gilt in Nordkorea als Staatsfeind, weil er mit seinen satirischen Porträts der Kim-Machthaber ihren gottgleichen Status in Frage stellt. In Südkorea wird er oft zensiert. Nun muss er seine Familie schützen und tritt nur unter Pseudonym und vermummt auf. Im Netz finden sich keine Bilder. "Sun Mu" bedeutet übersetzt "ohne Grenzen" und drückt den Wunsch nach einer vereinten koreanischen Halbinsel aus. Trotz Waffenstillstand seit den 1950er-Jahren besteht bis heute kein Friedensvertrag zwischen den Ländern.
In Sun Mus Bildern stehen immer wieder die drei Kim-Machthaber vor rosa Hintergrund. Sie sind nur schemenhaft wie in einer Skizze hingeworfen. Auf manchen Darstellungen geben sie anderen politischen Persönlichkeiten wie Donald Trump die Hand. Manchmal umarmen sie Disney-Figuren wie Pluto oder werden von anderen Charakteren der Trickfilm-Welt begleitet. Sun Mu greift auf die Bildsprache der Propagandamalerei zurück, um eine subversive Ästhetik zu entwickeln. So eröffnet sich mit den Protagonist*innen weder eine märchenhafte Szenerie noch eine andere Wirklichkeit oder sonst wie geartete Parallelität. Die monochromen Hintergründe in klaren und bevorzugt pastelligen Farben fokussieren die Paarbildungen und Interaktionen. Sie lassen uns auf kleine Gesten schauen. Ihre Darstellungsweise erweckt einen sehr konkreten Eindruck, beinahe so, als hätten all diese Begegnungen stattgefunden – auch jene mit Pluto und den Fantasiewesen.
Dagegen überraschen die abstrakten und großflächigen Werke. In ihrer hingeworfenen Malweise, unkontrolliert übersät mit Farbsprengseln erinnert ihre Lebendigkeit ein wenig an Action Painting, an einen Freischlag von der klassisch geschulten Maltradition.
Die Papiercollagen, von denen sich eine ganze Vielzahl auf zwei Wänden zusammenballt, erinnern an Werke der Pop-Art. Farbenfrohe Arbeiten, die den Kontrast nicht scheuen. Die blühenden Motive und ihre knallige Buntheit wirken wie eine Werbung – ein Appell für den Frieden, die Freiheit und Menschlichkeit.
https://www.art-in-berlin.de/incbmeld.php?id=6398&fbclid=IwAR0OoKsR9XaFEv9rj5JdvCaegJjLEDMfhsr1_JsYmZBL-cQRfhvZE8YFKEM
Kunst als Waffe: Sun-Mu-Ausstellung in Berlin
In seiner Heimat Nordkorea gilt er als gefährlicher Staatsfeind. Weil Sun Mu das Regime kritisiert. Seine Name bedeutet: Ohne Grenzen. Ein Künstlername des im Exil lebenden Malers.
https://amp.zdf.de/nachrichten/heute-journal/kunst-waffe-ausstellung-100.html
Der nordkoreanische Künstler Sun Mu in Berlin
Übermalen der Macht
Vom Propagandamaler zum Landesverräter. Sun Mu arbeitet mit seiner ironischen Pop-Art gegen die Teilung Koreas.
Die Parolen der Machthaber mit Füßen treten. Ganz wortwörtlich, auf den Treppenstufen. Ob das den nordkoreanischen Botschaftsangehörigen gefallen wird? Davon, dass welche die Ausstellung „I am Sun Mu“ im Kunstraum Meinblau auf dem Pfefferberg besuchen werden, ist Kurator Bernhard Draz überzeugt.
Sun Mu gilt in Nordkorea als Landesverräter, als Staatsfeind. Den mit Sonnenbrille und Hut vermummten Künstler kümmert so ein möglicher Besuch offensichtlich wenig. Seiner in Nordkorea zurückgebliebenen Familie wegen zeigt er in der Öffentlichkeit nie sein Gesicht und arbeitet unter Pseudonym. Sun Mu, das heißt auf Koreanisch so viel wie „Ohne Linie, ohne Grenze“. Ein Künstler, der seinen Traum von der Wiedervereinigung Koreas als Namen führt.
Zur Ausstellung
I am Sun Mu. Facing North Korea, bis 10.9. im Kunstraum Meinblau, Pfefferberg Haus 5, Christinenstr. 18-19, geöffnet ist Do-So 14-19 Uhr.
„Socialism is science“, Sozialismus ist Wissenschaft, übersetzt Sun Mu einen der gemalten Slogans auf der Treppenstufe. An den Wänden hängen noch mehr: „Was die Party entscheidet, tun wir. Auch wenn der Weg hart ist, wir gehen ihn mit einem Lächeln. Diene dem Volk.“ Neben Sun Mus farbenfrohe Ölgemälde und Papiercollagen gehängt, fungieren die Weiß auf Rot getuschten Schriftzeichen als ironisches Zitat. Die Slogans stammen aus dem propagandistischen Vokabular Nordkoreas. So aus dem Zusammenhang gerissen, erzählen sie von der Absurdität der dortigen politischen Realität.
Der sozialistischen Diktatur, in die er 1972 in einer Kleinstadt in der Nähe der demilitarisierten Zone hineingeboren wurde, hat Sun Mu vor Jahrzehnten den Rücken gekehrt. Was ihn allerdings nicht davon abhält, sich künstlerisch an Nordkorea und dem spannungsreichen Verhältnis zu Südkorea abzuarbeiten. Ein Thema, das man in Deutschland und in Berlin gut verstehe, wie Sun Mu in Anspielung auf die historische Erfahrung der Stadt- und Landesteilung sagt.
Hungersnot in Nordkorea
Eine akademische Ausbildung hat der Künstler schon in Nordkorea erhalten. Als traditioneller Propagandamaler der Armee. Die große Hungersnot der neunziger Jahre trieb ihn zur Flucht. Er sei durch einen der Grenzflüsse nach China geschwommen, erzählt er, und habe dort vier Jahre gelebt, bis er sich ohne Pass über Thailand und Laos nach Südkorea durchschlug. Dort besuchte er eins der obligatorischen Umerziehungscamps für geflüchtete Nordkoreaner und studierte bis 2009 noch einmal Kunst an der Hongik Universität in Seoul.
Seither lebt Sun Mu mit seiner Familie als freier Künstler in Seoul und stellt regelmäßig auch in den USA und Europa aus. In Berlin zuletzt 2015 im Kunstverein Neue Gesellschaft für bildende Kunst. Im selben Jahr hat der Regisseur Adam Sjöberg ihm einen Dokumentarfilm gewidmet. „I am Sun Mu“ erzählt mittels wummernder Beats und rasanter Animationen von Sun Mus Arbeiten, von einem Ausstellungsprojekt in Peking, das 2014 an den Interventionen nordkoreanischer und chinesischer Behörden scheiterte.
Sun Mu ist ein lockerer, angstfreier Typ. Ein Mann der direkten Botschaften und kräftigen Farben, subtil ist nichts in seiner Kunst, satirisch subversiv aber schon. Dass sich Sun Mu auch als Menschenrechts- und Friedensaktivist sieht, wie Bernhard Draz anmerkt, lässt sich eins zu eins draußen an der Hauswand ablesen, wo die Flaggen von Nordkorea und den USA vom Dach herunterbaumeln. Unten verschlungen zu einem Knoten, der das spannungsreiche Verhältnis der Staaten symbolisiert. Wie die Arbeit heißt? „Knot“, Knoten, grinst Sun Mu. Doofe Frage, wie auch sonst.
In der nordkoreanischen Propagandamalerei gelten die USA als der böse Erzfeind. Die Verbrechen des Koreakriegs, die Landesteilung – die historischen Traumata füttern Hass-Bilder, die das Regime Kim Jong-uns am Leben halten. Umso spektakulärer gerieten die Gipfeltreffen zwischen Kim Jong-un und Donald Trump, nach denen man von einer bizarren Männerfreundschaft zwischen autokratischen Seelenverwandten sprach. Sun Mu macht daraus das Gemälde „Zwei Herzen“, das zwei Monolithen in Rot und Blau beim Körperkontakt zeigt.
Rot als Symbolfarbe Nordkoreas und Blau aus Symbolfarbe des Südens lassen sich überall in Sun Mus Arbeiten finden, auf denen er sich als gesichtsloser Mann mit Hut oder als Augenpaar, das aus rotem Grund schaut, auch selbst porträtiert. In seiner Kunst der kräftigen Farben führt Sun Mu Elemente der Pop-Art, des Sozialistischen Realismus und auf einigen Gemälden auch Anklänge an traditionelle koreanische Tuschemalerei zusammen. Oft in Kombination mit Schrift, nur dass sie hier – anders als in der Propagandamalerei – das Motiv ironisiert. Etwa wenn unter der stilisierten Abbildung einer nordkoreanischen und einer US-amerikanischen Rakete „Weltfrieden“ steht.
Ob Sun Mu auf eine Wiedervereinigung der alten und neuen Heimat hofft? „Ich wäre glücklich darüber, dann könnte ich endlich wieder nach Hause fahren. Aber in meiner Lebenszeit glaube ich nicht daran.“
https://www.tagesspiegel.de/kultur/der-nordkoreanische-kunstler-sun-mu-in-berlin-ubermalen-der-macht-10344436.html
Pluto umarmt die Kims. Sun Mu im Projektraum Meinblau
Wehe, eines der Mädchen würde aus der Reihe tanzen bei diesem „Lied des Friedens“! Sie würde getadelt werden vom Choreografen, gar bestraft von den Lehrern und Kulturfunktionären der Demokratischen Volksrepublik Korea.
In fetten Schriftzeichen, Gelb auf Rot, steht diese Parole unter diesen auf Synchronität dressierten kleinen Nordkoreanerinnen mit rotem Halstuch und Blume im Haar zur blauen Schuluniform zu lesen.
Nur die vierte von links unterscheidet sich minimal von den anderen sieben Pionierinnen: Auf ihren Beinchen gibt es zwei weiße, längliche Markierungen; die anderen haben jeweils nur eine solche, links wie rechts. Und die Tanzschuhchen der Besagten tragen beide vorn an der Kappe zwei weiße Punkte. Bei den anderen Mädchen gibt’s das nur bei einem Schuh, links wie rechts. Eine winzige individualistische Rhythmusstörung inmitten der Gleichschaltung auf diesem Propagandagemälde. Ansonsten sehen die kleinen Sängerinnen aus wie geklont.
So hat es zu sein für Nordkoreas Machthaber seit Generationen. So verlangt es der Kunststil im totalitärsten, nationalistischsten, sozialistischsten Staat der Erde seit 1948, zunächst unter dem Großen Führer Kim Il-Sung noch orthodox marxistisch-leninistisch. Sein Sohn und Nachfolger Kim Jong-il etablierte die autarke, das Land vom Rest der Welt abschottende Chuch’e-Ideologie. Sie verlangt eine absolutistische, auf totale Hingebung getrimmte Unterordnung des Volkes. Und dessen Sohn Kim Jong-Un betreibt das Dogma ohne Rücksicht auf Verluste mit perfider Perfektion als hirnwaschende Staatsreligion.
Die beißende Ironie, die Sun Mu, der Maler dieses plakativen „Lied des Friedens“-Bildes zwischen die Synchron-Gestik und den Kontrast der knalligen Farben legte, muss man herauslesen können. In einer Art, wie man alles als Subtext lesen und interpretieren muss, was mit Kunst in Diktaturen zu tun hat, als gefährlichen Spagat zwischen Anpassung und Subversivem.
So ähnlich sahen schon die Propagandabilder zur NS-Zeit aus, im Stalinismus der Sowjetzeit, nach dem Zweiten Weltkrieg in den sozialistischen Staaten und bis heute noch in China. Kunst hatte entweder als Idealisierung der Politik oder als symbolstarke Waffe gegen Feinde zu dienen. Und Kim Jong-Un, der vergötterte „Oberste Führer“ Nordkoreas, hat verfügt: „Kunst nur für sich selber ist unbrauchbar.“ Er beruft sich, sagt Sun Mu, gar auf Konfuzius, der um die 500 Jahre vor Christus geschrieben hatte: „Wer Frieden will, der rüste für den Krieg.“
Wir können uns in dieser außergewöhnlichen Ausstellung im Projektraum des Berliner Vereins Meinblau e.V. darüber amüsieren, sie sogar als Propaganda-Variante der Pop Art oder Street Art goutieren. Der Hintergrund jedoch ist bitterer politischer Ernst. Es sind Bilder über die Situation in einem geteilten, zerrissenen Land. Nordkorea–Südkorea. Und wir spüren eine noch weit krassere Parallele zur vor 33 Jahren überwundenen 40-jährigen Teilung Deutschlands.
Einst wurde der Maler, der hier ausstellt, an der Kunstschule in Pjöngjang akademisch ausgebildet zum traditionellen kommunistischen Propagandamaler. Auch seit ihm die Flucht in die Freiheit glückte, bedient er sich dieses Stils. Nicht zum Spaß und schon gar nicht zum Gaudi des (westlichen) Publikums. Er dreht den Spieß um und benutzt die Stilistik, die Farben, die Symbolik als seinen persönlichen Widerstand; macht daraus Konzeptkunst.
Einst als Propagandamaler ausgebildet: Sun Mu träumt von einem vereinten Korea
Er kann seinen echten Namen nicht nennen, gab sich das Pseudonym Sun Mu (auf Deutsch: Ohne Grenzen). Darin steckt seine große Sehnsucht nach einem politischen Wunder. Er träumt von einem vereinten Korea. Und weiß doch, wie naiv das ist angesichts der politischen Realität. Der fünfzigjährige Maler hat in Nordkorea Eltern und Angehörige. Er weiß, er wird sie wohl nie mehr wiedersehen. Im Staate des „Obersten Führers“ Kim Jong-Un herrscht Sippenhaft. Da ist es besser, als verschollen zu gelten. Oder am besten als tot.
Aber Sun Mu (oder wie immer er einstmals hieß) hat überlebt, als er in der großen Hungersnot Ende der Neunzigerjahre über den Tumen Gang, den wilden Grenzfluss nach China, floh, „mehr noch wegen des schrecklichen Hungers als aus Angst vor den Machthabern“, wie er erzählt. Völlig entkräftet hat er es geschafft, wurde barmherzig aufgenommen von Leuten der koreanischen Minderheit in China. Man versteckte ihn, aber er war nicht willkommen, zu gefährlich für seine Landsleute, die im Reich der Mitte selber bloß geduldet sind.
https://www.berliner-zeitung.de/kultur-vergnuegen/kunst/einst-propagandamaler-nordkoreas-heute-in-der-heimat-unerwuenscht-sun-mu-zeigt-bilder-in-berlin-projektraum-meinblau-li.378745?fbclid=IwAR02gxXFQPj0phxGIUPyHL_0WKN7C8W3w0siS7HNFxf_Qxact_nxJkbGbsw
"Sun Mu" heißt "ohne Grenzen"
Sein wahrer Name muss ebenso geheim bleiben wie sein Gesicht. Doch in seinen Bildern zeigt der einstige Propagandamaler Sun Mu aus Nordkorea, was ihm am Herzen liegt.
Von Anja Brandstäter, Wolfratshausen
Eine junge Polizistin in weißer Uniform mit blauer Krawatte blickt scharf nach rechts und regelt den Verkehr. Mit einem Knüppel in den koreanischen Farben Blau, Rot und Weiß zielt sie knapp am Betrachter vorbei. Der Hintergrund ist geteilt in eine rote und eine blaue Fläche. Die rote steht für das kommunistische Nordkorea, die blaue für das westlich geprägte Südkorea. Der Titel des Bildes: “Run”. Es findet sich auf der Einladungskarte zur Ausstellung “Grenzenlos” des nordkoreanischen Künstlers Sun Mu, zu der die Künstlervereinigung “Art 5” in Zusammenarbeit mit dem Kulturverein Isar Loisach (KIL) in den Wolfratshauser Kunstturm am Schwankl-Eck einlädt.
Derzeit arbeitet Sun Mu in Starnberg. Am 10. Januar kehrt er nach Südkorea zurück, wo er seit seiner Flucht lebt. Dass er seine Werke in Wolfratshausen zeigen kann, verdankt er den Kuratoren Cornelia Oßwald-Hoffmann, Alexander Steig und dem Bairawieser Jae-Hyun Yoo vom Verein “Art 5”, der sich für den Austausch zwischen Europa und Asien einsetzt. Mehr als 90 Werke sind im Kunstturm zu sehen, darunter poetische kleine Collagen aus Buntpapier, aber auch großformatige Ölgemälde auf Leinwand, die auf den ersten Blick wie eine Pop-Art-Variante von Propagandapostern der nordkoreanischen Arbeiterpartei wirken.
Vor einem gelben Hintergrund steht eine Reihe kleiner Mädchen, auch sie sind uniformiert: weiße Bluse, rotes Tuch, blauer Rock. Alle haben die gleiche kerzengerade Körperhaltung eingenommen und die Arme zur Seite ausgestreckt, eine rote Blume im Haar. Die Szene könnte aus den sogenannten “Mass Games” stammen, einer Art Massengymnastik, die in Nordkorea als Form der darstellenden Kunst gilt und einer stark reglementierten Choreografie folgt. “Ich habe als Kind da auch mitmachen dürfen und war sehr stolz, für das Staatsoberhaupt zu singen”, erzählt Sun Mu. Der Schriftzug am unteren Bildrand bedeutet “Wir wollen Frieden”. Um Frieden und die Wiedervereinigung der beiden koreanischen Länder dreht sich alles in den Werken des Künstlers, der aus Nordkorea geflohen ist und sich nichts sehnlicher wünscht als ein vereintes Korea.
Sun Mu wurde als Propagandamaler der Armee ausgebildet. Das habe er zunächst als gute Arbeit empfunden, sagt er. Die drastische Hungersnot in den 1990er-Jahren trieb ihn jedoch zur Flucht. Über China, Thailand und Laos gelangte er nach Südkorea. Ein Horrortrip, der tödlich hätte enden können. Heute lebt und arbeitet er in Seoul unter dem Pseudonym Sun Mu, was so viel wie “ohne Grenze” heißt, um seine Familie in Nordkorea zu schützen. Auch auf Fotos zeigt er sich nur vermummt. In Nordkorea gilt er als Landesverräter. In seinen Gemälden setzt er sich vor allem mit den unterschiedlichen Systemen der beiden koreanischen Staaten auseinander, was ihm bereits mehrmals die Zensur gemäß dem Gesetz der Nationalen Sicherheit in Südkorea einbrachte.
Ausstellung in Wolfratshausen: “Self Portrait.”Detailansicht öffnen
“Self Portrait.” (Foto: privat/oh)
“Ich wurde kommunistisch erzogen”, erzählt er. “Dazu gehörte auch ein zehnjähriger Militärdienst.” Nordkorea habe bereits zu dieser Zeit Atomwaffen entwickelt. “Die USA gelten als Hauptaggressor und Südkorea als deren Kolonie.” Zur gleichen Zeit leistete auf der anderen Seite der Grenze Jae-Hyun Yoo seinen Militärdienst ab, der in Südkorea 26 Monate dauert. Yoo war an der innerkoreanischen Grenze stationiert. “Wäre damals irgend etwas passiert, hätten wir gegeneinander kämpfen müssen”, sagt Yoo. “Wie absurd.” Heute stehen die beiden Männer nebeneinander im Wolfratshauser Kunstturm.
Getroffen haben sie sich erstmals 2008 in Korea. Jae-Hyun Yoo nahm dort zusammen mit seiner Frau Farida Heuck Interviews für eine Forschungsarbeit über den Grenzraum zwischen Nord- und Südkorea auf. Daraus ist ein Handbuch entstanden, das anlässlich der Ausstellung “Shared. Divided. United.” 2009 in Berlin veröffentlicht wurde. “Das Interview mit Sun Mu hat mich unglaublich berührt”, sagt Yoo. “Er war mutig, neugierig und selbstkritisch.” Schon zu diesem Zeitpunkt habe er den Wunsch gehabt, seine Werke in Deutschland zu zeigen.
Bereits vor vier Jahren organisierte er gemeinsam mit Alexander Steig eine Ausstellung auf dem Münchner Domagk-Gelände für Sun Mu. Thematisch schließt die Schau im Schwankl-Eck daran an. Der Vorschlag, Sun Mu zu zeigen, fand bei Daniela Satzinger vom KIL sofort offene Ohren. Ein Teil des Erlöses aus verkauften Bildern fließt an die örtliche Flüchtlingshilfe.
Die Ausstellung im Kunstturm wird am Freitag, 6. Januar, 19 Uhr, eröffnet. Infos zum Verein “Art 5 e.V” unter www.art5.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