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부럼없어라展
핑크 빛 속삭임의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 ● 2008년 새해 설날을 맞아 북한에서는 갖가지 크고 작은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는 당의 주요 인사들과 외교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소년들의 설맞이 모임인 『세상에 부럼없어라』 공연이 펼쳐졌다.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말은 북한 주체사상의 선전표어로 모든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려라 /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노래가사는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말은 '세상에 좋은 일만 항상 있으라'라는 뜻이다. 즉, 김일성 수령님 밑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언제나 행복한 일만 있다는 말인데, 이 노래를 들으면 왠지 모를 씁쓸한 서글픔이 밀려온다. 밥 한그릇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이가 수두룩하고 한 해에도 수천 명의 이탈국민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또 국가는 여러 가지 차관을 위해 폐기된 핵시설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펼칠 수 밖에 없는 현실 위에서 이 노래는 과연 누구를 위해 불려지고 있는가? 개혁, 개방을 하고 싶어도 쉽게 할 수 없는 21세기 사상누각의 대명사가 된 북한이 스스로의 체제를 존속시켜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러재끼는 노래가 바로 '세상에 부럼없어라'이다. 이를 악물고 정해진 웃음을 지으며, 연습한 동작을 펼치는 어린아이들의 얼굴 그 어디에도 부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얼굴은 마치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요?"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어설픈 키치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렇다면 북한 어린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그네들의 반대편에서 가엾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들의 부럼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진정 행복한가? 선무의 이번 전시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이러한 물음들에서부터 시작한다.


선무, 남한예술을 시작하다 ● 2002년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넘어 온 선무라는 개인이 예술가가 되어 예술행위를 펼쳤을 때 남한 사람들의 시선은 관심 그 자체였다. 많은 언론에서 그를 인터뷰하고, 그와 그의 작품을 소개했으며, 미술계 여기저기에서 찾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왜일까? 그의 작품이 예술적으로 대단해서였을까? 아니다. 선무가 탈북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결코 경험해 볼 수 없는 탈북이라는 달콤한 소스에, 언제나 먹고 싶은 예술이라는 난해함이 만나 적정의 하모니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의 중심에 바로 선무가 있다. 이제는 탈북해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 환영의 시대는 지났다. 왜냐하면 한 해에도 수 천명의 탈북자가 남한으로 들어오고 있는 사회적 부담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흡수통일에 대한 선례에서 오는 우려와 한국인으로 살아가기에 너무나 버거운 현실에서도 탈북은 여전히 관심거리다. 그 관심의 표면을 벗겨내면 무엇이 있을까? 거기엔 약간의 우월감과 거리감, 그리고 비교대상으로써 '그는 어떠한 생각을 할까'라는 호기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인가? 선무가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가? 물론 선무가 겪은 특수한 상황을 바라보는 동정의 관심이 그와 그의 작품을 잘못 이해하는 덫이 될 수도 있다. 아시아의 블루칩 중국미술의 싹쓸이가 자본주의의 배는 채워줬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삶을 생각하고, 이용가치를 지닌 상품으로써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그리고 그들의 작품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여기 북한출신 작가 선무가 있다. 어떤 이는 그를 희소성의 경제적 가치로 볼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그를 소외자, 혹은 이방인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아야 할 선무는 스스로의 삶을 영위해나가면서 자신의 기억과 자신이 겪은 경험들의 파편들을 끄집어내어 정리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의 선무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도 아니며, 언론 미디어의 좋은 기사거리 또한 아니다. 그는 이 땅을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 중 예술활동을 하는 한 사람이다. 그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이 정리되었다면 이제 그의 이야기를, 그가 작품에서 풀어내는, 작품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볼 준비가 되었다. 그럼 화가 선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이들의 지저귐 『세상에 부럼없어라』 ● 앞서 선무의 이번 전시가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물음들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의 작품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아이들이 손잡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북한의 축하공연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얗고 정갈한 레이스 셔츠에 남색치마를 두른 소녀들이 팔 벌려 손잡고, 입을 크게 벌리고 명랑한 노래를 부르는 생동감은 그것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생동감 있는 진실성을 표현하고자 소녀들을 등신대로 그렸다. 아마 처음에는 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성인의 크기에 맞게 그렸을 것이다. 아이들의 머리 위, 파란색 배경으로 뒤덮힌 곳에는 얼굴의 흔적들이 어렴풋이 나타난다. 작가는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노래를 어릴 적부터 부르면서 컸고, 많은 축하공연을 보았다고 한다. 어릴 때 바라보던 누나들의 맑고 우렁찬 노래는 소년 선무의 귀와 눈에 환상적인 소리와 이미지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한 환상은 언제나 기억 속에 더 큰 이미지로 각인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북한 주체사상의 선전으로 끊임없이 불려 질 때 인간의 감각은 무디어 진다. 자신이 알고 있던 관점과의 비교 군이 없기 때문에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진실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기억들은 기념비적인 크기로서 자신의 실제 기억을 억누른다. '그래 그 때 보았던 것이 정말 크고 웅장했지! 아마 집채만 했을 걸!'식의 기억들은 자신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자신의 행동을 영웅화시키기에 이른다. 물론 그 믿음이 처음에는 주저하는 시기가 있다가, 나중에는 진정으로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된다. 이것이 바로 증폭되는 거짓말의 원리이다. '세상에 부럼없어라'라는 사회주의 선전표어와 김일성 우상화는 북한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들에게는 진실 그 이상의 진실, 즉 사실로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파간다의 논리이다. 선무는 바로 이러한 선전의 상황들을 '아이들'시리즈를 통해 표현하였다. '아이들'시리즈는 대부분이 노래를 부르는 것과 연관되어있다. 그것은 바로 축하공연의 한 장면이라는 것인데, 과연 무엇을 축하하는 것인가?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이 김일성을 숭배하고,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체제의 위대함을 교육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된 이러한 이미지는 그 목적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선무가 그린 '아이들'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이번 전시에서 높이 194cm에 너비 130cm의 캔버스 5개(총 너비 650cm)가 한 작품인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벽에 걸지않고, 기대어서 바닥에 내려놓은 구성이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그 해답은 바로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찾을 수 있다. 선무는 어린시절 북한에서 실제 이러한 공연을 펼쳤던바 이것이 가지는 힘을 알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이 각인된 기억에서는 '굉장히 크고 아름답고 환상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선무는 북한을 탈출하여 그 공연의 실체를 인식했고, 그 모습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그 모습을 직시하기를 희망했다. 그는 작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벽이라는 허공이 아닌,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그들과 함께 서있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재현의 방식이 아니며 자기인식의 비판 또한 아니다. 그는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체제의 비논리성에 대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 폭로는 남한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관점들을 통해 비교된 양식이며, 두 체제가 가져다주는 갈등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선무는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또한 작품에 끌어들인다. 즉, 자기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북한식 주체사실주의로 받아들이게 되는 왜곡과 편견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다름아닌 타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삶의 영역에서 함께 대화를 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의도가 여기에 부합한다면 그가 소녀들을 등신대 크기로 그리고, 작품을 땅에 내려놓은 이유는 적정의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이 논리를 뒤집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벽에 기대어 바닥에 내려놓은 그의 작품 앞에 낮은 팬스가 쳐진다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보안을 위한 조치이기는 하나 해석을 확장시켜보자면 작품에서 선무가 말하고자 하는 사실이 체제의 비논리성의 고발이나, 그것에 쉽게 다가갈 수 없음을 뜻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그 사실이 예술이라는 영역에 들어왔음을 뜻하는 것이고, 둘째, 북한이 체제의 비논리성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쉽게 벗어버리지 못하는 자가당착적인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고발이 예술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미적이고 개념적인 차원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며, 자가당착적 상황의 고발은 자신이 겪었고, 또한 겪고 있는 두 체제에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구령에 발맞추고, 하나의 구령에 움직여야만 살 수 있는 곳. 나의 그리움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선무의 눈빛 속엔 앞의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교차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선무의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또 다시 두 가지의 물음들이 생긴다. "지금 선무는 어디에 있는가?" 또한 "선무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생일날 웃음 짓는 김정일의 추리닝 바지 ● 선무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앞서 설명한 '아이들' 시리즈는 선무의 전시에서 이제껏 보여준 이미지였다면,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인 「김정일」, 「생일날」, 「조선의 풍경」등은 더욱 풍부한 내용과 표현형식을 지닌다. 「김정일」은 짙은, 그래서 붉은 빛이 도는 핑크색의 나이키 점퍼에 갈색 옆 스프라이트 줄무늬 아디다스 추리닝 바지를 입고, 왼쪽으로 살짝 몸과 고개를 돌려 웃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에서 김정일은 마치 동네에서 담배 사러 나온, 배불때기 아저씨마냥 편안하고 익살스럽다. 허겁지겁 나왔는지 한 쪽 신발은 나이키, 다른 쪽은 아디다스 신을 신고 있다. 핑크색 바탕에 캐릭터 만화같이 등장한 김정일의 초상화는 발랄하다 못해 키치적으로 느껴진다. 그 모습은 배불뚝이 그 자체이다. 주체사상의 수장으로서의 김정일은 온데간데 없고, 익살스러운 백수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선무는 분명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민족의 지도자로 인민대중의 혁명적 령도인 김정일을, 신성화되어 범접하기 힘든 그 인물을 선무는 마음대로 재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선무가 김정일을 그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김정일도 그렸고, 김일성도 그렸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재현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선무가 이번 전시에 보여준 「김정일」은 단순히 재현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상징적 오브제로써 작용한다. 그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자 풍자의 대상인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김정일에게 입혔다. 그리하여 김정일은 다시 사회주의를 살았던 선무에게 선망과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이다. 김정일이 입고 있는 점퍼의 오른쪽 어깨의 붉은 색에서 왼쪽 배의 흰색까지 연결된 변화의 빛은 김정일의 앞쪽에 강렬한 빛이 있음을 상정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김정일은 눈이 부신지 빛의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애써 웃음 짓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개를 돌려 빛을 바라보면 내가 짓는 웃음들이 한 순간에 일그러질텐데!' 라는 고민을 간직한 웃음 뒤에는 쇄국과 개방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북한의 현 실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베트남이 개방정책을 펼치고, 중국이 개혁을 외치는 새천년의 시대에 김정일은 여전히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한 웃음이 선무에게는 위태롭고 불안한, 그리하여 역설적인 분홍색으로 다가온다. 희망차고 환희에 찬 핑크는 소녀적인 꿈에 머물러 있게 한다.
그의 이러한 핑크빛 발랄함, 혹은 불안함은 「생일날」이라는 작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생일날」은 태양절을 의미하는데 태양절(太陽節)은 1912년 4월 15일에 김일성이 출생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북한은 1962년 4월 15일 김일성의 50회 생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하였고, 1968년부터는 정식명절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이후 1974년 김일성의 62회 생일을 기해 민족최대의 명절로 제정하고 각종 기념행사들을 대대적으로 개최하였고, 김일성 사망(1994.7.8) 3주기를 맞아 그의 생일을 태양절로 제정하였다. 김일성 생일 행사 준비를 위해 국민들은 갖가지 청소와 행사준비, 생산량 달성이라는 무거운 부담을 떠안으며, 고생 끝에 받아드는 것이 바로 명절공급명목으로 당에서 나오는 몇 가지 특식과 선물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일날」인민들에게 나오는 생일상이다. 짚으로 질끈 묶은 몇 근의 고기와 소주, 치약, 칫솔 등 생필품과 당에서 나오는 네모난 선물박스, 그리고 두 권의 교시노트(김일성-교시, 김정일-교시말씀)가 전부인 생일상은 그나마 인민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행복해야 할 선무의 「생일날」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정서를 전달한다. 각가지 선물들을 받쳐 들고 있는 상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오는 긴장감이 바로 그것이다. 상부의 복잡한 사물들과 하부의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끊임없이 갈라놓는다. 이것이 단순히 생일상을 재현한 것인가? 생일상을 지탱하는 탁자가 분홍 빛 탁자보에 가려져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그 위에 올려져있는 것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태양절에 받아든 「생일날」의 실체이다. 어린시절 알록달록 사탕들을 입에 물고 마냥 좋아하던 시절, 그 사탕은 달콤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사탕이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가를 알고 난 다음부터는 그것은 결코 달콤할 수 가 없다. 선무가 바라본 북한의 모습이 바로 이 「생일날」과 같다. 수백만 명이 배고픔으로 죽어가도 빛깔 좋은 태양절 선물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주체사상의 나라, 핑크 빛 세계 유일의 부럼 없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선무의 기억 속 행복한 나라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동이죠", "세상에 부럼 없어라"를 아무리 외치고 외쳐도, 끊임없이 외칠 것이 남아 있는 세상이 바로 선무가 기억하는 그 나라인 것이다.
선무는 지금 세상에 부럼이 없을까? 단정하여 알 수는 없다. 더 큰 혼란 속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무가 작품활동을 통하여 자신이 알고 있던 '부럼'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그것의 가치판단을 스스로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앞 글에서 물었던 물음, 선무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는 자신의 관점과 또 다른 자신의 관점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 마주함을 통하여 선무는 자신을 정의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무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과연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 우리들은 선무의 작품을 어떤 시각에서 보고 있는가? 이제 우리 자신들의 정의내림이 필요하다. 그 정의가 범주화 되어야 하는 것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또 다른 관점들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나의 관점과 다시 마주하게 했을 때 비로소 선무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 것이다. 이제 조용히 선무의 우렁차면서도 속삭이는 핑크빛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 백곤
행복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展
『행복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展은 탈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위치한 '선무'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 한국에 있어 분단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38선 이남에 위치한 우리들에게 분단이라는 현실은 언젠가부터 머릿속에서 지워진 현실이 되었고 북한의 사람들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연히 남북분단은 현실이며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이다. 그 속에서 작가 선무의 목소리는 특별하다.
선무는 중국에서 라오스를 통해 7년전 한국으로 왔다. 아니 '남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한 것 같다. 북한에서 그림을 전공한 작가는 남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북한에서 배운 사실적인 화풍을 그려오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이야기... 그에게서 북한을 빼면 남는 것이 얼마일까? 그는 북한을 이미지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화폭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작가에게 세상을 향해 북에 대한 부조리함을 토해내는 수단이자 그가 탈북과정에서 마주했을 죽음의 순간과 남한에 와서 느꼈을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트라우마에 대한 자기 치유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행복에 겨운 터질듯한 웃음을 띠고 있다. 그의 말로 태어나면서부터 빨간물 즉,'주체사상'의 물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다. 선무역시 그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벗어난 그는 그것이 행복이 아님을 안다. 그의 화면에서는 그곳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이 교차한다. 그럼 지금 그와 우리가 사는 이곳은 어떤가? 우리는 정말 행복한가?
그가 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가장 큰 이유는 통일이다. 북한의 부조리함을 가장 잘 알고 피부로 느낀 사람이면서도 미워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 오히려 내 고향과 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그는 '예술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라고 믿는다. 비록 그 힘이 미약할지라도 언젠가는 그의 염원이 북한에 전달되어 그곳에 남은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선무(線無)'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선을 없앤다는 의미의 선무는 남과 북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세상을 염원에서 시작한다. 그곳에선 정치도 이념도 없다. 물리적 사선을 넘은 선무... 이제는 남한에서 보이지 않는 문화의 선, 편견의 시선도 뛰어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작가.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가진 작가 선무로 살아남길 바란다. ■ 대안공간 충정각
우린 행복합니다! 노순택_선무展
우리 시대 북한은 무엇일까?_북한이란 무엇일까? 친구? 같은 민족? 동포? 아니면 빨갱이? 테러지원국? 악의 축? 공산당? 저주받은 집단? 귀찮은 덤태기? 우리 사회에서 과연 북한만큼 동일한 스펙트럼의 상극적 두 극점을 왕복하는 실체가 또 있을까? 북한은 오직 북한이 아니라 남한 사회에 가장 강렬하고 포괄적으로 작용하면서 이 사회를 좌우로 나누는 내 안의 실체이다. 이 실체로서의 북한이 내 안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너무나도 노골적이며 너무너무 처절해서 이 전시의 필자인 나로선 잠시라도 망각하고픈 그런 존재다. ● 우리 시대 미술에서 북한은 무엇일까?_불행하게도 이토록 현실적이고 노골적이며 처절한 실체로서의 북한이 우리 안에서 미술적으로 숙고된 경우가 있던가? 이 질문엔 그리 긍정적 답을 내릴 수가 없다. 물론, 지금까지 여러 기자들과 다큐멘타리스트들이 북한을 오갔고,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북한을 이미지화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또 민중미술이 극렬하게 미술의 꽃을 피울 때, 마침 이미지 구사의 전성기를 맞았던 몇몇 선구자들이 북한을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 북한은 그것의 실체적인 존재감에 비해 협소하게 해석되어졌다. 물론, 그 협소함이란 저널리즘과 민중미술의 협소함을 말한다. 그것은 입장이 불분명한 이국적 현실에 대한 정보이거나, 정치적 신념에 의해 재구성된 것들. 그래서 그 이미지들은 관객이나 독자, 즉 나의 공감을 얻지 못한채 저들의 북한으로 남아 있었다.
- 선무_조선의 하늘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7
두 사람이 만났다._이 상황에서 두 남자가 만났다. 하나는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선 탈북작가. 그 둘은 사진기하나만 달랑 들고 맹렬하게 부패하며 폭발하는 모순지점들을 기록해 온 가련한 사진술사. 그 하나는 선무고, 그 둘은 노순택이다. 이 둘이 만났다. 이 둘이 만나 자신들의 북한을 말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북한은 철저하게 직접 경험된 북한이다. 선무는 이미 20대 후반까지 북한을 살아낸 작가다. 노순택은 이미 두 번이나 북한을 취재한 베테랑 다큐멘타리스트다. 노파심에서 적는바 노순택의 경험을 폄하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미 2004년 간행된 『분단의 향기』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미 노순택은 북한에 가기 전부터 우리 안의 북한을 처절하게 경험해 온 이미지술사였던 것이다. 즉 이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북한은 그 이전 선배들이 보여준 한계들을 일면 넘어서는데, 그것은 직접적으로 체험된 북한이라는 것이다. ● 이미지로 태어난 북한_둘째, 이 두 남자에 의해 체험된 북한은 철저하게 미술로 변환된 북한이다. 물론 미술이란 단어의 모호함과 단순함을 고려해야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미술적 변환은 이미지 구사의 방법적 정통성 뿐 아니라 독자적 이미지화 작업에 대한 자의식에 기초한 어떤 과정들을 말한다. 즉,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저널리즘의 정보로서, 혹은 작가의 정치적 저항의 신념에 결부된 북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남자의 북한은 매체에 대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선과 색, 그리고 빛과 형태의 문법에 의해 전환된 이미지라는 것이다. 이미지의 이미지다움으로 변환된 그들의 북한은 단순한 좌파, 혹은 우파의 편견으로서의 북한을 넘어서 북한을 숙고하는 또 다른 층위를 설립한다.
- 선무_벗다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7
사선을 넘어선 탈북작가 선무_선무는 탈북작가다. 탈북이란 무엇일까? 이 이상한 단어가 파생하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탈북이란 말 그대로 북쪽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다. 왜 탈출했을까? 어떻게 탈출했을까? 이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북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는 북을 어쩌려는 것일까? 왜 남이었을까? 남에서 북의 탈출은 어떤 의미를 갖을까? 남이 탈북의 이상이며 목적이 될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의미의 탈북도 가능하지 않을까? 즉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서의 북은 아닐까? 어떻게 돌아가야할까? 왜 돌아가야 할까? 그 돌아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모든 대답을 원고지 몇매에 다 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물음들은 선무가 남한에서의 미술실천을 통해 보여주게 될 북한에 대한 중요한 비평적 관건일 수있다. 또 선무가 이 물음을 이미지로 대답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은 한국현대미술의 의미구조를 풍부하게 만들어갈 것임에 틀림없다. 힌트 한가지. 그의 이름은 '선무(線無)'. 물론 본명은 아니다. 어쨋거나 '탈북'에 관한 그 모든 물음의 의미적 대답은 '선'을 '없앴다'는 것이다. 그의 선은 무엇일까? 그 선의 '없앰'은 어떤 의미일까? 결국 그는 선을 없애기 위해 선을 넘은 것이다. 혹은 그 역도 성립한다. 그런 의미에서 탈북은 곧 回北, 向北 또는 歸北의 의미가 된다. 아니, 더 이상 남과 북으로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세상이 된다. 거기선 탈북도 없고 귀순도 없다.
- 노순택_Red House_컬러인화_2007
사회의 상처를 배회하는 가련한 사진술사_선무가 사선을 넘었다면 노순택은 사선을 배회하는 이미지술사다. 선무의 사선이 지리적 이데올로기적 금기의 경계라면 노순택의 사선은 우리 내부의 인식을 좌우로 나누는 경계면이다. 노순택의 경계는 비록 보이지 않는 사고의 경계지만 이 경계는 선무의 경계만큼이나 실질적으로 삶을 파괴하고 유린한다. 노순택은 이 경계가 우리의 사회적 삶에 작용하는 구체적인 양상들을 아주 시적인 감각의 뷰파인더를 통해 기록해 왔다. 그의 다큐멘타리가 단순히 저널리즘의 회로 속에서 유통되는 인포메이션이 아닌 것도 현실의 이미지화에 개입하는 시적 감수성 때문일 수 있다. 그의 카메라를 통해 이미 시가 되버린 현실. 그것은 서정시가 아니라, 썩은 냉소를 유발시키는 아주 은밀한 풍자시이거나, 살벌한 극적 반전마저 내포한 해체시다. 2004년 『분단의 향기』, 그리고 지난 해 『얄읏한 공』에 이르기까지 그의 카메라는 한국사회를 곪아터지게 하는 근본적 문제를 기록해 왔다. 그 근본문제란 무엇일까? 그것은 왜 문제이고 그것은 또 왜 근본적인가?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적어도 노순택의 대답은 적어도 그것이 '내안의 북한'과 완전히 별개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노순택의 북한은 그저 외부의 실체가 아니라, 남한사회 내부에서 수많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면서 우리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 가는 존재일 수있다. 중요한 건 정작 괴물은 북한이 아니라 북한을 괴물로 만드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노순택의 카메라는 사진은 북한을 찍고 있지만, 그가 타격하고자 조준하는 의미의 뷰파인더는 항상 북한을 보는 우리 자신의 시선에 돌려지고 있다. 즉 노순택은 북한을 이미지화하고 있지만, 그 이미지가 소환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미지를 보는 남한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건 동시에 노순택이 단순히 사물의 세계를 기록하는 다큐멘타리스트가 아니라, 매체자체의 기능과 본질을 숙고하고 그 숙고를 이미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인식에 대한 영향력으로 변형시킬 줄 아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 노순택_Red House_컬러인화_2007
하나의 현실에 대한 두 개의 시선_이미지를 낳는 두 생산자. 선무와 노순택. 그들은 과연 북한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그들의 이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같은 대상(referent)을 본다. 그 대상이란 북한사회와 북한 사회의 인민들이 보여주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지로 기표(signifying)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기표(signifier)들의 편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선무는 충실한 리얼리즘의 이미지 어법에 충실한 작가이며, 노순택 역시 사진가, 그것도 다큐멘타리사진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유사한 기표에 부여하는 의미(signified)의 내용은 어떨까? 역시 일치할까? 놀랍게도, 그 의미의 편차는 상당히 크다. 그리고 이 의미의 편차가 만들어내는 차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북한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한 스팩트럼을 보여준다. 물론 이 스팩트럼은 차별적인 이미지들이 기둥이 되어 만들어낸 미술적인 스팩트럼이다.
- 노순택_Red House_흑백인화_2007
주체탑은 7시에 꺼지네_두 남자가 생산한 이미지들 속에 주체탑이 등장한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하기엔 두 사람의 직관적 공통점이 너무나 도드라진다. 선무의 주체탑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 저 밑에 작은 기표로 존재한다. 노순택의 주체탑 역시 비슷한 서정으로 기록된다. 그렇다면 주체탑에 대한 두 남자의 감성적 태도는 어떨까? 선무는 주저 없이 "까부수고 싶다"고 얘기한다. 선무의 주체탑은 곧 김일성과 김정일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 한반도에 작용하는 절대적 폭력으로서의 선-경계를 만들었다. 그 경계는 그의 고향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들었다. 그를 탈북으로 몰았던 것, 그로하여금 그 먼 사선을 넘게 한 것 역시 바로 그 굶주림이었다. 그의 주체탑은 곧 이 모든 과정의 원인이며, 그가 경험한 그 모든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선 파괴되어야 할 대상이다. 노순택의 주체탑은 어떨까? 그는 "그대로 두어야한다"고 말한다. 노순택은 주체탑이 북의 "정신의 정수"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빨갱이란 말인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주체탑을 보존하자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시대를 보여주는 희극적 기념물로 남겨두자는 것이다. 이 거대한 기념물은 일종의 거울이다. 이 거울은 북한 내부사회를 비추기도 하지만 노순택에겐 이쪽 남한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즉, 거울로서 주체탑에 비추이는 것은 놀랍게도 이승복의 동상이다. 한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결연한 시적 카피와 함께 남한 사회에서 반공의 상징으로 경배되었지만, 이제는 흉물이 되어 버린 이승복 동상과 주체탑은 이미지적 등가를 이루는 것이다. 북한에서 자행되는 모든 악의 근원으로서의 주체탑과 남한 사회를 반추하는 거울로서의 주체탑. 이 두 남자가 4평짜리 작은 공간에서 보여주는 주체탑은 여러겹의 해석적 층위를 이루며 이미지-북한을 다루고 있다. ● 우린 행복합니다_노순택과 선무가 보여주는 또 다른 공통의 기표는 행복에 겨워 만면에 희열을 띤 소녀/소년들이다. 이른바 행복동이들. 기쁨의 극에 달한 아이들. 어떻게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의심스런 표정들. 선무는 "이것은 행복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불쌍한" 존재들이다. 선무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 역시 이미 그들의 행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선무가 그들의 행복을 감히 부정할 수 있는건 그 행복이 "유치원에서 배운 첫글자가 '어버이 수령님 감사합니다'였다"는 사실을 여전히 또렷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복은 조작된 것이다. 행복마저 조작하는 그들은 그래서 못된 것이다. 노순택 역시 행복동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사진에서 '우리는 행복합니다'라는 문구는 평양의 초등학교 전경에 등장한다. 노순택은 이 행복동이들에 관해 다른 입장을 취한다. 노순택은 그 아이들을 보며, 그들은 충분히 행복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노순택의 문제는 "걔네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제(우리)가 말할 자격은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의 물질적 풍요와 가장된 정치적 자유가 보장하는 바의 천박한 우월감을 토대로 저들이 행복할 수 없다고 당연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전히 노순택은 행복동이들의 과장된 희열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읽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행복할 수 있지만, 그 행복은 곧 우리의 유신의 모습일 수 있다. 물론 행복동이들의 행복을 긍정하건 부정하건 여전히 북한 사회는 좀더 변해야하고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 두 남자의 시각이 일치함은 당연하다.
- 『노순택+선무 2인전: 우린 행복합니다! 』의 이적성 여부를 조사하는 종로경찰서 보안과 직원_2007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 선무와 노순택. 노순택과 선무. 차별적인 삶의 궤적을 그려 온 두 남자가 비슷한 경험과 이미지로 만났다. 이들은 이 시대 한국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미술적 해석의 다양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해석의 폭과 깊이가 거대한 의미의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이곳,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은 부암동 고개 꼭대기에 위치한 고작 4평짜리 허름한 전시공간에 불과하다. 전시를 통한 미술실천이 생산하는 의미의 반경이 반드시 외형적 규모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중요한 실증적 사례로 기억될만하다. 이러한 사례를 위해서는 협소한 조건을 극복할 기획기능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올해 이 공간의 기획기능은 지난해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를 감독한 미술평론가이자 독립큐레이터 류병학과 그와 입장을 함께하는 여러 동조자들이 맡고 있다. 이번 『노순택+선무 2인전: 우린 행복합니다! 』에는 류병학과 민병교, 이은화, 김동일 등이 참여하고 있다. ■ 김동일